SHIN HYUNG SUB
Shin Hyung Sub_Impression
Nam Hye Jin, 2016
만일 인생이 예술을 모방한다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 사실이라면, 신형섭 작가의 예술을 모방한 인생은 진중함 속에 기대하지 못했던 즐거움으로 가득할 것이다. 마치 예술은 오로지 아름다운 그 자체에 존재 이유가 있다는 듯이, 그의 작품들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이전에 이미 그 자체로 온전히 아름답다.
오랜 시간 단장하고 신경 쓴 외양에 대해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을 지닌 댄디처럼, 그의 작품 속 비닐과 종이들은 무심한듯 시크하게 깨져있다. 'Planned Accident' (계획된 사고) 시리즈는 깨질 수 없는 비닐과 종이를 깨지게 하기위해, 종이 조각 하나 하나를 잘라내 재구성하고, 실제 유리를 부분적으로 깨서, 그 모양을 토대로 칼날로 비닐을 그어 완성시킨 것이다.
폰타나가 화폭을 넘어선 미지의 공간을 궁금해하며, 이를 위해 단숨에 칼을 휘둘러 순간의 쾌감을 맛보았다면, 작가는 총을 쏘기 전까지 수십 번 고민하고 망설인 끝에, 다른 세계를 선명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작은 구멍 하나와 균열의 흔적을 얻은 셈이다. 폰타나의 말대로 이것이 파괴가 아니라 구성이라면, 작가의 공간은 호기심으로 문의 창호지에 여러번 침을 바르고 구멍을 내어 마침내 얻은 공간처럼, 짜릿하고 감질맛나는 구성일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폭력과 파괴의 총알이 관통한 구멍 마저도 공들여 생각하고 고심하는, 거칠고 가벼운 세대에 던지는 작가의 농담 섞인 충고처럼 느껴진다. 만약 이 세상의 폭력의 잣대가 도덕적인지 아닌지가 아니라, 폼나는 것과 아닌 것에만 있다면, ‘계획된 사고’ 시리즈는 아마도 제대로 멋진, 매력적 파괴의 형태일 것이다.
작가가 수년간 몰두해왔던 root 시리즈는 중심없이 계속 뻗어나가는 구조의 뿌리를 전선으로 형상화한 것인데, 특히 uprooted는 중력을 거슬러 하늘 위로 닿고자 하는, 한계를 대하는 뿌리의 힘찬 도전으로 느껴진다. 마치 어린 왕자가 거꾸로 자라는 바오밥 나무가 행성을 다 덮을까봐 자꾸만 자르려고 하듯이, 작가 자신도 수년간 자신의 작품세계를 지배해 왔던 root 시리즈를 멈추고 다른 새로운 영감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흐르고자 한다.
2016년 그의 새로운 다큐멘터리는 microscopic 시리즈로, 일상의 오브제를 슬라이드 마운트에 끼워 환등기를 통해 투사하는 클래식한 형태를 지닌다. 잘 다룰 줄 아는 재료만을 가지고 온전히 작품으로 표현한다고 말하는 작가는 평범한 사물들을 포착해 새로운 감성을 자아낸다. 보들레르에게 있어서의 현대성이 일시적인 것에서 영원한 것을 끌어내는 것이라면, 신형섭 작가의 현대성은 이처럼 이미 잘 알고있는 것에서, 새롭게 느껴지는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다.
'와류’(Turbulence)는 환등기에 넣은 깃털이 쿨링 팬에 의해 떨리는 미세한 감성이 확대되어 투사된 작품이다. 매 전시마다 달라지는 선풍기 바람의 방향으로 제목을 짓기로 했다는 작가의 위트는 환등기 투사의 요건인 어둡고 로맨틱한 실내와 어우러지며, 대중적인 동시에 실험적으로 다가온다. 투사의 주인공으로 깃털이 낙점될 때까지 쿨링 팬에 의해 얼마나 많은 오브제들이 떨려야만 했었을까 상상해보면, 어릴적 꿈이 과학자였다는 작가의 어린아이 놀이같은 실험 장면이 연상된다. 도리안 그레이 증후군에 걸린 듯이 나이 들고 싶지 않아 하며, 아이를 흉내내는 어른들로 가득한 현대미술계에서, 작가는 오히려 멋지게 성장하고자 노력하는 진중하고 순수한 소년처럼 느껴진다.
‘모스키토세레나데’ (Mosquito Serenade)는 작가가 쓰레기 매립지였던 난지 미술 창작 스튜디오를 돌며 수집한 오브제를 슬라이드 마운트에 끼워서 환등기를 통해 투사한 작품이다. 순수한 아이처럼, 그러나 마음과 정신은 예민한 하이에나처럼, 작품 소재를 찾아 헤매이던 작가는 마침내 각종 곤충 포획에 성공하고 모기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해낸다. 자, 이제는 항상 없애 버려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던 모기의 아름다운 자태를 감상할 시간! 모기는 섬세하고 우아한 조형을 뽐내며, 해충은 해롭기만 하다는 우리의 고정관념과 무심함에 그 이름도 아름답게 ‘윙윙’ 거리는 세레나데를 연주하며 반전의 메세지를 날린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아름다운 꽃이 조지 아오키프에 의해 확대되며 그 숨겨진 아름다움까지 더해지면서 울림이 증폭 되듯이, 이미 죽은 모기의 사체는 신형섭 작가의 환등기 속에서 확대되며 더욱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듯 선명하게 감지된다. 이를 통해 삶과 죽음 혹은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고정된 이해관계들도 다양한 방법과 시점에 따라 새롭게 느껴질 수 있음을 커다랗게 투사한다.
실제로 70, 80세대의 음악을 즐겨 듣는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의 작품들은 마치 비틀즈의 음악을 듣는 것처럼, 클래식한 것 같지만 새롭고, 순수하지만 가볍지 않다. 새로운 시도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지만 그만의 색상을 오롯이 담아낸다. 대중들의 취향에 맞추기 보다는, 새로운 소재를 제공하면서, 새로운 취향을 만들어 가고있는 작가는 진지함과 위트로 무장한 감성으로 우리의 상상력이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도록, 쿨링 팬 속의 바람처럼 끊임없이 부드럽게 간지럽히고 있다.